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하여

Edelkochen Essay #07.

여행자의 식탁, 김진영 작가 - 살면서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

살면서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

한동안은 고등학교 시절에 봤던 톰 행크스 주연의 '빅'이었다. 살면서 몇 번 인생 영화가 바뀌었다.
2015년,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나서는 근래까지 바뀌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김태리
주연으로 만들어졌지만 찾아보지는 않았다. 원작의 감독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영화에서는 많은 음식이 나온다. 주인공이 농사짓거나 채취한 것으로 하는 요리로, 보고 있으면
군침 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수제비, 수확한 팥으로 만든 만주와 찐빵, 무말랭이 등 다양한
요리가 나온다. 여러 장면 중에서 두 가지가 마치 방금 본 것처럼 뇌리에 박혀 선하다. 하나는,
무말랭이 말리는 장면에서 친구랑 대화하는 장면, 창문이 보이고 배경으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창문과 눈 사이에 무를 말리는 장면이 나온다.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도 있어, 추위도 조미료의 하나다'라고 주인공의 독백 같은 대사가
나온다."추위도 조미료의 하나다"온도 변화는 살아 있는 것을 긴장하게 만든다.

추위가 닥치면 얼지 않으려고 채소나 과일은 당도를 올린다. 맹물보다 설탕 탄 물이 서서히 어는
이치다. 일교차가 큰 지역의 농산물일수록 당도가 높아지는 까닭이다. 얼지 않으려는
자국책이지만 사람들에게는 축복이다. 나머지 하나는 쌀이었다. 주요리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저렇게 해서 만든 도정한 쌀은 어떤 맛일까 궁금함을 불러 일으켰다. 트랙터가 아닌 낫과 기계로
벼를 베어내고는 켜켜이 쌓아 말렸다.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 가을 편>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오래전이었다. 맛 칼럼니스트와 예전 쌀 맛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트랙터나 지금처럼 건조기가 없던 시절에 쌀 맛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년 농사를 위해 일부 농가에서 자연 건조로 한 쌀 맛을 본 적이 있다는 칼럼니스트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언젠가는 먹어봐야지 하고는 기억 속에 저장했다가
잠시 잊고 살았다. 영화를 보다가 잊고 있던 쌀 맛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추수하는 장면이었다.

요리의 주제는 호두였지만, 호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인공이 추수한 쌀을 묶고, 던지고, 쌓는 장면이 나오는 장면을 몇 번이고 봤다. 저런 쌀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바쁜 일상에서 다시 잊혔다. 잊혔지만 머릿속에서는 잠재된 상태였기에 기회를 만났을 때 튀어나왔다.

경기도 양평에서 귀농해서 농사짓는 최병갑 농부를 만났다. SBS에서 방영한 ‘폼 나게 먹자’를 찍으면서 인연이 됐다. 산부추 농사를 짓는데 찾은 이가 적었다. 방송은
산부추가 수확이 심지 않을 때였다. 이래저래 촬영은 마쳤지만, 이듬해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업을 제안했다. 쌀을
만드는데 가격은 상관없으니 밥맛을 우선으로 해보자고 했다. 농사짓는 것은 최병갑 농부가, 파는 것은 내가 하기로 말이다. 그렇게 의기투합. 쌀 재배를 했다. 우선
모를 심는 이양기의 간격을 넓혔다. 그렇게 해서 첫해 수확했다. 품종은 삼광이었다. 내가 먹어 본 삼광 쌀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이듬해 농사는 전년보다 이양기
간격을 넓혀서 모를 심었다. 그리고 가을걷이 때 트랙터 대신 영화에서 처럼 자연 건조를 하기로 했다.

양평-추수

작년에는 참 하느님이 무심히 비를 뿌렸다. 그 덕에 농부가 고생을 많이 했다. 계절은 그렇게 지나 가을, 추수의 시간이다.
추수에 맞추어 논으로 나갔다. 트랙터 한 대면 끝날 일을 예닐곱 명이 달라붙어서 하고있었다.
사람 숫자로 보면 비효율도 이런 비효율이 없었다. 베어낸 벼를 묶는다.
묽은 벼는 옮겨서 논 가운데 설치한 걸대로 가져가 말린다. 그렇게 사나흘, 건조한 벼를 트랙터에 넣고 낟알을 턴다.
트랙터로 했으면 한 방에 끝냈을 일이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 겸손함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하는 속담이다.
벼는 익으려고 고개를 숙일 때 수확해야 맛있다고 한다.

그렇게 수확한 벼를 바람과 햇볕에 말린 쌀이어야 제대로 밥맛이 난다고 했고, 실제로 그랬다. 힘들고 어려운 농사였지만 결과는 최고였다.
며칠 후 도정했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왕복 200km 길을 달려 쌀을 받아 왔다. 택배로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받아 온 쌀을 씻고는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가마솥에서 물이 끓기 시작하더니 잠잠해지기 시작한다. 뚜껑을 닫고 불을 줄인다. 5분 뒤 가장 낮게 조절한 불을 끄고는 뜸 들였다. 1분, 2분, 3분 지나는 시간이.
하루, 한 달, 일 년이 지나는 듯했다. 그렇게 해서 십 분 조금 넘었을 때 뚜껑을 열었다. 그렇게 빛나는 밥은 처음이었다. 밥 향이 주방 가득 퍼졌다. 밥을 주적으로
뒤집지도 않고 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아, 흐흐흐, 뜨거. 뜨거”라면서도 밥을 뱉어내지 않았다. 처음 맛보는 밥맛이었다.
십 년도 전에 이야기만 들었던 자연 건조 쌀을 이렇게 맛을 봤다는 사실에 혼자서 감개무량에 빠져 있었다.

늦은 저녁상을 차려 밥을 먹으면서 생산자에게 전화했다. 고맙고, 고맙다고 말이다. 생산자도 이런 밥맛은 처음이라도 한다. 같이 추수했던 이들 중에서 구십
노모에게 밥을 해드렸더니 두 그릇이나 드셨다고 한다. 예전 먹었던 밥맛이라고 말이다.

쌀을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이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단일 품종, 삼광, 일품 등 단일 품종이어야 하고 두 번째는 도정 일자다. 쌀은 먹을수록, 도정일이 지날수록 미질이
떨어진다. 그다음이 포장으로 적은 포장으로 자주 사 먹는 게 가장 좋다. 보통은 이렇게 강의를 하고 다니거나 글을 쓰곤 했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할 예정이다.
어떻게 키웠는지도 말이다. 가을에 가장 맛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낙지, 전어를 먼저 답한다. 필자에게 가장 맛있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쌀’이다. 쌀의 맛이
가을에 100이라면 이듬해 여름에는 50이 되기 때문이다. 여름이다.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밥맛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구매할 때 포장 단위를
줄여야 한다. 포장 단위를 줄이면 도정 일자와 소비가 끝나는 시점이 가깝다. 10kg 단위로 구매했다면 여름에는 5kg 이하가 좋다. 반찬이 뭐가 좋을까 고민 한다.
점심, 저녁 할꺼 없이 말이다. 사실 밥상의 주인공은 밥이다.
맛있는 밥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이름 난 산지보다는 도정과 포장이다. 뜨거운 여름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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