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냉면민국

Edelkochen Essay #10.

한우다이닝울릉 김인복 - 대한냉면민국

  • Edelkochen Essay 08. 레시피는 변해야 한다 여행자의 식탁, 김진영작가
  • Edelkochen Essay 09. 간장은 간장인데 부르는 이름이 많다. 김진영작가
  • Edelkochen Essay 10. 한우다이닝울릉, 김인복
  • Edelkochen Essay 01. jazz 팝칼럼리스트 김태훈
  • Edelkochen Essay 02. Rock 팝칼럼리스트 김태훈
  • Edelkochen Essay 03. Bob Dylan 팝칼럼리스트 김태훈
  • Edelkochen Essay 04. 카스틸리오니 아르코 조명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박현주
  • Edelkochen Essay 05. 디자인은 유행을 타서는 안됩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박현주
  • Edelkochen Essay 06. 최적의 물건을 사용하는 기쁨.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박현주
  • Edelkochen Essay 07. 살면서 기억이 남는 영화가 있다. 여행자의 식탁, 김진영 작가

Profile

‘한우 다이닝 울릉’의 오너 세프 김인복
30여 년 외식 현장을 누비며 다양한 트렌드를 연구해 온 세프이자 외식경영 전문가.
늘 새로운 콘셉트의 메뉴를 고안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접목해 맛의 흐름을 잡아낸다.
최근엔 평양냉면 전문가로 전국에 한식 스타일의 면 요리 전문점을 만들어 가는 중.
세계인이 사랑하는 한식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울릉도의 이야기를 담은
'한우 다이닝 울릉'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은 겨울의 냉면 맛이다.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릴 때 방 안에는 바느질하시며
<삼국지>를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만 고요히 고요히 울리고 있다.
눈앞의 글자 하나가 둘, 셋으로 보이고 어머니 말소리가 차차 가늘게 들려올 때
‘국수요~’ 하는 큰 목소리와 같이 방문을 열고 들여놓는 것은 타래타래 지은 냉면(冷麵)이다.
살얼음이 뜬 김장 김칫국에다 한 저 두 저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 본 이요! 상상이 어떻소!”

<별건곤(別乾坤)> 1929년 12월호, 김소저의 ‘사시명물 평양냉면’ 중에서
일제강점기에 창간한 유명한 잡지 <별건곤>의 평양 탐방 기사 한 대목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한식 면 요리 중 가장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음식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냉면일 것입니다.
예로부터 수많은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냉면을 대표하는 평양냉면에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냉면, 메밀국수, 녹말국수, 칼국수 등 우리나라의 국수는 생일, 혼례, 귀빈 접대 음식으로 경사스러운 날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습니다.
삼대가 모여야 국수를 먹는다는 옛말처럼 귀한 국수는 잔치를 치르는 날 손님상에 빠지지 않던 음식이었습니다.

길게 이어진 면발은 장수와 결연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지요. 바야흐로 행운, 재물, 건강, 행복, 사랑의 의미를 담은 음식입니다.
이 때문에 어른들은 국수를 잘라먹지 말라는 말씀을 해주시곤 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야가 많아 밀 재배보다는 메밀 재배가 수월했습니다. 때문에 예로부터 구황 작물로 전국적인 재배가 이뤄졌습니다.
특히 북부 지방에서는 생산량이 많이 국수의 남다른 발전을 견인했습니다. 메밀은 고려 고종시대의 [향약급성방]에 ‘목맥(木麥)’이란 이름으로,
자라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흉작이 들었을 때 대체할 수 있는 곡물로 소개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도 같은 이유로 구황작물로 이용되어 [산림경제
(홍만선, 1700년대 초)]에는 ‘모밀’이라고 하였으며 심는 시기와 방법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밀은 성질이 고르며, 차고, 달며 독이 없어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동의 보감에서는 ‘위와 장의 열기와 습기를 없애고 소화가 잘 되게 하는 효능이 있어서 1년 동안 쌓인 체기도 내려가게 한다’고 하였으며,
본초강목에서는 ‘적체(積滯)를 없애고 열종(熱腫)과 통풍(痛風)을 사라지게 한다’고 하고,
중국 당나라 의서인 ‘식료본초’에 메밀이 정신을 맑게 해주고 오장의 부패물을 제거 시켜 준다고 하여 예로부터 약용으로 메밀을 이용하여 왔습니다.

메밀의 낟알은 가루로 내어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전, 메밀죽 등의 음식과 메밀산자와 같은 한과 재료로 활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 잎과 줄기는 나물로, 다 자란 줄기는 풀 사료로, 꽃은 차와 꿀로 먹는 등 식생활에 다양하게 이용하여 왔습니다.
메밀 낟알 껍질은 베개 속으로 많이 이용하는데, 가볍고 부서지지 않으며 통풍이 잘되어 여름철에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메밀국수의 유형을 살펴보면 주로 반죽을 압출하여 끓는 물에 적접 넣는 방식이 많습니다.
이는 제면과 동시에 전분을 호화* 시켜 면 형상이 유지되기 위한 조치인 것입니다.
따라서 메밀면은 제면 후 전분의 호화 과정 없이 건조했다가 사용하려면 메밀의 함량을 30~40% 이하 수준으로 사용해야 가능했으며,
이러한 메밀 전분의 물성 때문에 고조리서 등에 나타난 면의 전 처리 공정은 면의 유형에 따라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호화: 녹말에 물을 넣어 가열할 때에 부피가 늘어나고 점성이 생겨서 풀처럼 끈적끈적하게 됨. 또는 그런 현상.

조선시대 이후 국수틀을 이용해 국수를 뽑아 바로 냉면을
만들어 먹는 경우 국수틀을 물이 끓는 솥 위에 고정해 둠으로써
면이 성형됨과 동시에 끓는 물에서 바로 호화 되도록
하였습니다. 면이 익으면 바로 건져 내어 냉수에 헹군 후
사용하는 즉석 생면의 형태인 것입니다.

1850년 [오주연문장전 산고]의 기록을 보면 이미 그 당시
시장에서 메밀국수를 판매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록에서는 시장에서 산 메밀면을 볕에 말려 두면
갑작스럽게 손님이 찾아올 경우나 여행을 갈 때 사용하기
좋다고 하였습니다. 국수를 뽑아 호화 시킨 면을 시장에서
사다가 집에서 건조 시킨 후 저장해 두었다가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장에서 파는 이러한 숙면 형태의 면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1970년대까지도 판매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도경’에서는 ‘10여종의 음식 중 국수 맛이 으뜸이다’라고 이야기했고, ‘고려사’에도 ‘제례에는 면을 쓰고 사원에서 면을 만들어 판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은 국수 즉, 면 요리를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조선은 물론 고려 시대부터 즐겨먹었던 면 요리의 주재료는 재배가 어려워 중국에서 수입해야만 하는 귀한 밀이 아닌 전국에서 쉽게 재배가
가능한 메밀이었고 세종대왕 때(1424년 11월 5일)에는 궁중에서 메밀 소비가 많아 나라에 바치는 메밀을 더 할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냉면도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아주 큰 부자나 양반들만 점유할 수 있는 권력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냉면은 대체로 고려 말부터 시작되었으며, 겨울 뿐만 아니라 여름이나 봄에도 먹었던 것으로 전합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면 냉면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데 면 만을 따로 사서 먹거나 음식점에서도 냉면을 팔기도 했던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
왕과 양반 뿐만 아니라 평민도 냉면을 자주 먹었던 걸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명나라나 청나라 사신이 방문하면 첫 번째 술안주로 국수를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이 국수를 세면(細麵)이라 했는데, 대개 세면 재료는 녹말이었지만, 메밀가루도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왕실에서 왕실 어른을 위한 간단한 술상 차림인
반과상(盤果床)에도 국수는 빠지지 않는 찬품 이었다고 합니다. 18세기 말~19세기 초반에는 평양의 명물인 냉면이 한양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어렵지 않게 냉면을 구하거나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냉면집이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낙원동 뒷골목 선술집에 모여 앉은 문인들은 냉면 한사발에 소주를 곁들이며 망국의 시대를 탄식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서울에 냉면집이 확산되며 1920~30년대를 평양냉면의 황금시대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문화는 보통 상류에서 하류로 전파되는 경향이 있지만, 냉면은 하류층에서 시작해서 상류층으로 유입되었을 확률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간 역시 평양에서 시작하여 중심부인 한양으로 이동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민중의 입맛에서 시작해 양반층에 전달되고 임금에게까지 전해진
음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커피를 애용하던 고종황제가 냉면 마니아 였다는 기록들도 여럿 전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평안도 세시풍속 음식이던
냉면과 골동면에 대한 일화를 들어 알 수 있습니다

1905년 9월 20일 고종 황제와 앨리스 루스벨트의 오찬 메뉴 앞, 뒷면
1905년 9월 20일 오찬 메뉴
<신축사월 이십팔일 진참도감 사찬하오 발기> 부분 / 출처 : [백년식사] 주영하 _(2020.11.02)

1905년 9월 20일 고종황제는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Theodore Roosevelt1858.1.27. ~ 1919.1.6. ]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를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초청하였습니다. 고종황제가 최초로 서양 여성과 공식 오찬을 먹었다는 기록입니다. 고종황제는 서양식 원형 식탁에서
왕세자인 순종과 함께 오찬에 참석하셨습니다. 이 날의 메뉴를 기록한 목록에는 골동면 외 16가지 요리와 3가지 장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골동면에 대한 황실의 기록은 그 외에도 1901년 4월 28일 고종황제가 헌종의 계후 명헌태후의 71세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의 상차림을 기록한
<신축사월 이십팔일 진참도감 사찬하오 발기>에도 나타납니다. 냉면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식재료에서 골동면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황실의 골동면 조리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메밀국수 30 사리, 소 등심 4분의 1, 달걀 다섯 개, 후추가루 한 움큼, 들깨가루 한 움큼, 간장 두 숟가락, 참기름 두 숟가락, 파 세 뿌리 등
식재료가 기재되어 있고 메밀면 사리에 간장, 참기름, 후추가루로 양념하고 소고기 편육과 달걀지단을 고명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잘게 썬 파와 들깨가루를 뿌려 완성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입니다. 냉장고와 제빙기가 없던 다른 계절에는 얼음을 띄우고 육수에 면을 말아먹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이제 냉면은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음식문화도 변모한 셈입니다.
이렇듯 냉면은 처음 접할 때 매우 단순한 음식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시대를 거치며 다양하게 진화, 변용된 음식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재료를 넣고 비비거나 육수에 따라 기존의 속성이 바뀌며 다양한 맛을 냅니다. 바로 섞음의 철학이 잘 반영된 우리 음식입니다.

2021년, 미식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냉면이 다양하게 온라인에 공유되며 신 부흥기를 맞고 있습니다.
시대를 넘어 전달되며 바야흐로 대한냉면민국이라 일컬을 만한 트렌디한 대표 음식이 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하여 - 한우다이닝울릉, 김인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