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하여

Edelkochen Essay #02.

칼럼리스트 김태훈 - Rock

녹슬지 않는(Stainless) 영원한 청춘의 음악 Rock

록은 청춘의 음악이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흥겨운 외침과 환호성은 코로나 이전의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록은 젊은 음악이다. 스피커에서 터질 듯이 들려오는 기타와 드럼의 질주, 목이 찢어져라 울부짖는 보컬의 소음은 세상을 향해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웅변하는 청년들의 무엇과 닮아있다.

흑인들의 리듬 앤드 블루스(R&B)에 기원을 두고 있는 록 음악은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백인 청년의 등장으로 전성기를 맞이했고, 비틀스와 롤링스톤스 같은 영국 밴드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초기에는 젊은이들이 춤을 추기 위한 흥겨운 댄스 음악으로 사용되었지만, 부모들이 음탕하며 저급한 음악이라고 이 음악을 금지하자, 몰래 듣는 이들을 통해 반항과 저항의 상징(!)이 되어버린 음악이다. 또 다른 전의도 존재한다. 록 밴드 크래쉬의 멤버였던 조 스트러머는 록 음악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살아있어서 참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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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이 들려지는 공연장을 찾아본 이들이라면 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진 것은 없지만, 살아있음 그 자체가 즐거운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에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그러나 삶의 무게에 지쳐가는 나이에 이르면, 이제는 뛰어오르지도, 아니 공연장을 찾지도 않는다. 록이란 그런 음악이다. 물론 단순히 나이가 청춘을 가르는 기준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영국 밴드 롤링스톤스의 보컬 믹 제거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흔이 넘어서도 무대 위에서 여전히 록 음악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여전히 현역 로커이며 록 음악사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상징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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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록 음악을 시간을 거슬러 녹슬지 않는 청춘의 음악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단순하며 명료한 그 음악적 특징에 있다. 물론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대변되는 변이의 록 음악도 존재하지만, 록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직선의 솔직함이다. 꾸밈과 숨김이 아닌, 욕구와 열정에 정직한 이야기, 그리고 감정이 음악에 담겨 있다. 1969년에 개봉한 한 편의 영화는 록 음악에 대한 이러한 정의를 영상으로 완벽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피터 폰다와 데니스 호퍼 주연의 영화 <이지 라이더>는 시작과 동시에 자신의 손목시계를 땅바닥에 던져버리곤 질주하는 두 명의 히피를 보여준다. 등장하는 음악은 스테판 울프의 ‘Born To Be Wild’.

세상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두 명의 히피는 제도와 규칙을 상징하는 시계를 내동댕이치곤 오토바이의 굉음과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영화가 개봉됐을 당시, 피터 폰다의 아버지이자 미국 영화계의 거물 배우였던 헨리 폰다는 자기 아들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를 이렇게 논평했다. “아들이 나온다고 해서 몇번이고 봤지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기성세대의 몰이해를 얻어냈으니, 이 영화는 성공한 청춘 영화이자 로큰롤이었던 셈이다.

록 음악이 청춘의 음악인 이유는 이 음악을 이해하는 시기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젊은 날에만 아주 잠시 자신을 이해할 시기를 선사하곤, 어느 시간이 되어버리면 영원히 그 문을 닫아버리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젊어서 록 음악을 들었던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록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젊어서 록 음악을 듣지 않았던 이들은 나이 들어서 결코 록 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지나가 버린 한 때의 청춘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수많은 로커가 명멸해갔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군대 제대 후 결국 기성세대의 제도권에 굴복했고, 시간의 풍파를 견디지 못한 밴드들은 짧은 활동 시기를 뒤로하고 해체라는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그것은 록 밴드들의 흥망성쇠이지 록 음악의 몰락은 아니다. 성경의 창세기처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은 것처럼, 엘비스는 비틀스를 낳고, 비틀스는 라디오헤드를 낳고, 라디오헤드는 콜드플레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시대와 세대를 바꿔가며 록 음악은 여전히 자신의 DNA를 보존하고 있다.

1950년대를 기점으로 70년의 시간이 지나갔지만, 지금도 캘리포니아의 차고에서 홍대의 지하연습장에서 젊은이들은 록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웬디를 찾아갔던 피터 팬이 나이가 들어 버린 그녀에게 실망하고선 그녀의 아이들과 날아 가버린 것처럼, 세상에 청춘이 존재하는, 끊임없이 새로운 청년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한 록 음악은 그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 영원히 녹슬지 않는 무엇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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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하여 – 락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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