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하여

Edelkochen Essay #01.

칼럼리스트 김태훈 - 재즈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랑도 믿지 않는 시대에 영원을 이야기하는 것도 우습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믿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음악에 대한 신앙이 그렇다.

고대의 신에 대한 제사, 그리고 살아있음의 환희를 위해 발명되었다는 음악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멋진 연미복을 입고 웅장한 홀에서 우아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가 있다면, 빛도 들지 않는 어딘가의 지하실에서 소음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주는 누군가도 있다. 모두 제각각의 공간에서 제각각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에게 제안한다. 함께 즐겨보지 않겠냐고.
재즈는 20세기의 음악이다. 노예에서 막 해방된 아프로-아메리칸들과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의 혼혈이 만들었다. 역사는 이들을 크레올이라고 기록한다. 19세기 말, 행진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음악은 뉴올리언스의 풍토와 함께 번성하기 시작했고, 시카고로 건너가 만개했다. 20세기 초는 마피아의 시대였다. 술을 금지하는 금주법의 시대에 술꾼들은 지하로 모여들었고, 그들을 위한 여흥이 필요했으니 그것이 곧 재즈다. 마피아는 한 손에 밀주, 한 손에 재즈를 들고 자라났다. 알 카포네의 도시 시카고가 재즈의 부흥지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파티용 음악으로 경쾌한 리듬을 사용했던 빅밴드 스윙의 시대를 지나고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라는 아티스트들에 의해 이어진 비밥(bebop)의 시대가 도착했다.
jazz사진
이 두명의 천재들은 재즈를 바꿨고, 그래서 시대도 변했다. 재즈가 예술이 되길 바랐던 이들은 더 복잡하며 더 어려운 길을 선택했고, 사람들은 난해한 재즈에서 섹시한 록으로 고개를 돌렸다. 젋은이들은 재즈가 연주되는 클럽을 찾지 않았다. 비틀스가 등장하는 TV 앞이나, 롤링스톤스의 공연이 펼쳐지는 콘서트장으로 모여들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화가 났다. 다리를 흔들며 <Hound Dog>를 부르는 엘비스라는 경박한 백인 청년에게 신경질이 나 있었다. 결국은 흑인들의 R&B에서 시작된 것이 로큰롤이었으니, 로큰롤도 흑인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찬사는 머리에 그리스를 바른 백인 청년에게 쏟아졌다. “한 백인 청년이 위대한 흑인들의 유산을 도둑질해 갔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이 투정은 20세기 중반에 두고두고 이야기되었다.
jazz사진 2장
클럽에 젊은이들이 오지 않자 재즈는 젊은이들을 찾아 나섰다. 록 음악을 재즈에 합성한 퓨전 재즈의 시작이다. 존 맥러플린 같은 백인 기타리스트가 고용되고, 전자 오르간을 사용해 만들어진 사운드는 기존의 재즈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당시의 평론가들은 과연 이 곡을 재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로 논쟁했다. 재즈와의 연결점은 창시자가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재즈 아티스트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대중은 언제나 위대하다. 시대에 선택된 이 음악은 결국 퓨전 재즈라는 이름으로 용서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많은 일이 있었다.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는 브라질의 라틴 리듬을 자신의 재즈와 섞었다.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반 [Getz/Gillberto]의 탄생이다. 웨스트 코스트로 명명된 미국의 서부 해안에선 쳇 베이커라는 백인 트럼페터가 제임스 딘처럼 헤어스타일을 매만지곤 감미로운 쿨재즈를 연주하고 있었다.
재즈는 지역과 시대를 넘나들며 섞이고 변했다. 아마도 20세기 초의 어느 재즈 팬이 현재에 도착한다면, 재즈라고 불리는 음악에 고개를 흔들지도 모르겠다. ‘이건 재즈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식과 내용이 바뀌었어도 ‘이건’ 재즈다. 재즈가 추구했던 가치는 여전히 유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재즈시대에 위대한 피아니스트 듀크 엘링턴은 음악을 이렇게 정의했다. “음악엔 장르가 없다. 그냥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만이 있을 뿐이다.” 팔이 여덟 개 달린 문어처럼 연주한다고 했던 드러머 엘빈 존슨은 자신의 음악을 또 이렇게 설명했다. “내 음악은 힘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며 클럽에 들어온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음악은 아름답다. 아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한 예술 평론가는 말했다.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라고. 여기서 그 상태란 아름다움이다.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저 변하는 것은 외모와 형식뿐이다. 아니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외모와 형식이 변하는 것이다. 노련한 뱃사람이 풍랑에 맞춰 자신의 균형을 바꾸듯이.

그래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음악이 그렇고 바로 재즈가 그렇다.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하여 – 재즈 Jazz

팝 칼럼리스트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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