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는
변해야 한다

Edelkochen Essay #08.

여행자의 식탁, 김진영 작가 - 레시피는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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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22일,

두 가지 일이 겹친 날이었다.
그날은 축구 경기가 있던 날이었고, 내 결혼식이 있던 토요일이었다.
6개월 전, 식장 예약할 때는 월드컵 8강은 안중에도 없었다.
16강만 가도 좋겠다는 상상을 했었다. 현실은 내 상상과 전혀 다르게 흘렀다.
16강, 이탈리아전 아내와 “설마 설마” 했었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8강 경기를 치르는 날 우린 결혼식을 치렀다. 결혼식은 다행히 1시,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빠르게 근처에 미리 섭외한,
커다란 TV가 있는 카페에서 경기를 봤다. 4강 경기는 필리핀 세부에서
필리핀인지 태국인지 모를 외국 방송으로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로 19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난 밥을 했다. 결혼할 때 서로 약속했었다.
밥은 내가, 집사람은 청소와 빨래를 담당했다. 그 사이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입학해서 올해가 고3이다. 우리의 약속은 여전 하고 맞벌이를 하고 있다.

주말 풍경은 집사람은 늦잠을 자고 난 밥을 한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반찬을 준비한다.
밥은 돌솥이나 가마솥으로 하다가 요새는 가끔 전기밥솥을 쓴다.
결혼 초기부터 지금까지 없다가 근래에 전기밥솥을 샀다. 국은 생일날을 제외하고는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 반찬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주메뉴 하나에만 힘을 싣는다.
볶음이든, 찌개든 주요리가 실하면 겉다니 반찬에 젓가락이 잘 안 간다.

2002년 월드컵 사진
2002년 월드컵 사진

반찬을 하기 전, 밥부터 한다. 밥하는 순서는 간단하다. 쌀을 꺼내고 현미나 밀을 섞는다.
밀이나 현미는 밀폐 용기에 물과 함께 냉장고에 넣어 뒀다가 그때그때 꺼내 쓴다.
발아 현미 공장을 다니며 터득한 나만의 방법이다.
물을 충분히 흡수한 밀이나 현미가 항상 준비되어 있다.
백미는 쌀을 빠르게 몇 번 씻고는 바로 쌀을 한다. 물은 손등을 넣고 맞추지도 않는다.
눈으로 대충, 손등 높이의 반 정도로 맞추고는 밥을 한다. 쌀을 불리는 작업은 생략이다.
생략해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생략하라고 누가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쌀을 불려야 한다고 배웠다.
관행, 배운 대로, 하던 대로만 하고 있다.

쌀을 불리라 했던 시절의 쌀과
지금의 쌀은 다르다.

우선 아밀로스 함량이 다르다. 196~70년대에 우리가 주로 먹던 쌀은 정부미, 즉 통일벼였다.
서울에서는 가까운 경기지역에 정부미 대신에 일반미로 부르던 아키바레를 심었다.
통일벼는 필리핀 종과 국내산 종을 교배한 쌀로 수확량이 많은 장점이 있었다.
그 덕에 식량 자급을 할 수 있었지만, 밥맛은 우리와 맞지 않아 돈 많은 서울 사람들은 일반미를 사 먹었다.
그 당시 통일벼를 심지 않으면 가을 수매에 참여할 수 없었다.
정부에서 수매한 쌀은 정부미, 그 반대가 일반미였다.
쌀은 아밀로스 함량이 적을수록 찰기가 좋아진다. 찹쌀은 아밀로스 함량이 0에 가깝다.
동남아에서 먹는 인디카종은 30%, 우리가 주로 먹는 멥쌀은 17~19% 사이다.
정부미 시절은 20%가 넘는 아밀로스 함량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쌀을 불리지 않으면
찰기 없는 밥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밥하기 전 30분 담갔다가
체에 밭쳐 물기를 빼고는 밥을 짓는다. 물은 손등 높이로 맞춘다.
검색하면 거의 내용이 바뀌지 않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사진

돼지고기 수육을 가끔 한다. 물을 붓고는 소금만 넣고 한 시간 삶는다. 끝이다.
무엇을 넣지 않을수록 고기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저렇게 끓여도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지만 요새 고기는 잡내가 없다.

TV에서는 틈만 나면 고기 요리할 때
잡내 제거하라고 노래를 부른다.
비밀스러운 팁이라고 소주, 된장, 커피 등
오만가지를 다 넣는다.
잡내가 없는 고기에 오히려 잡내를 집어넣고 있다.

고기에서 잡내가 난다는 것은 상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예전에 냉장고가 없고, 도축 시설이 변변치 않을 때는 잡내가 쉽게 났다.
진짜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다. 호랑이가 금연한 요새는 이렇다.
냉장 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도축한다. 부위별로 잘라서는 진공 포장을 한다.
포장한 고기는 냉장차에 실려 판매처로 간다. 정육점에서는 냉장고에 고기를 보관한다.
고기가 상할 틈이 없다.

동남아 여행을 가보면 돼지고기를 상온에서 두고 파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고기에서는 미생물이 빠르게 자란다.
도마와 칼은 자주 청소를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냄새가 안 나면 이상한 환경이다.
그런 곳에 고기는 잡내를 잡아 줘야 한다. 고기 요리에 향신료가 듬뿍 들어가는 까닭이다.
홈쇼핑에서 고기나 육가공을 제품을 팔 때 보면 잡내 제거를 위해
이것을 넣어서, 저것을 넣어서 잡내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는 TV에 나오는 요리연구가나 요리사도 마찬가지다. 고기 요리할 때 빼먹지 않고
잡내 제거하라고 이야기한다. 도대체 어떤 고기를 사용하기에
잡내를 잡아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지 궁금하다.

잡내라는 게 상하기 직전의 고기라는 이야기다.
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잡내는 더 이상 없다.
재료가 바뀌면 레시피는 변해야 한다.

2002년 월드컵 사진

오늘하고픈 이야기는 바로 “레시피” 이야기다.
쌀을 불려야 하고, 고기는 잡내를 제거해야 하는 등등의 변하지 않는 레시피 말이다.
재료가 변했지만 레시피는 하던 대로 그대로 하고 있다.
수육을 할 때는 된장이 필요하고, 소주를 넣는다. 그래야 맛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필자는 매일 밥을 한다. 식구들에게는 해주는 마음이야 변치 않지만, 레시피는 바뀐다.
20년 전 밥을 할 때는 쌀을 불렸고, 수육할 때는 된장을 넣었다.
재료를 공부하면서 더 쌀을 불리지도, 고기 잡내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

음식을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레시피는 재료에 따라 변한다.
1960년대는 멀리 있는 이에게 전보를 치는 경우가 흔했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톡을 한다.

그렇듯 그때와 지금은 식재료가 다르다.
레시피도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하여 - 여행자의 식탁, 김진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