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육식민국

Edelkochen Essay #12.

한우다이닝울릉 김인복 - 대한육식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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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풍각쟁이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거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고
오이지 콩나물만 나 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 일제강점기 조선의 가수 박향림이 1938년에 발매한 오빠는 풍각쟁이

 

인간은 태초부터 수렵활동을 이어오며 육식을 즐겨왔습니다. 우리 민족 또한 선사시대부터 독특한 육류구이 문화를 이어오며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현재의 외식문화에서도 육류구이의 소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류구이 문화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근대 이후 육류 문화의 변화를 통해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K-Culture, 그중에서도 독보적이고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 K-Food를 대표하는 K-BBQ 문화의 미래를 준비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식을 대표하는 육류 구이 메뉴를 살펴보면 불고기와 갈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구이는 꽂이에 꿰어 직화구이 하는 적(炙)과 꽂이를 쓰지 않고 철판이나 돌 위에서 간접 불로 굽는 번(燔)으로 나누었습니다. 적(炙)의 기원은 고구려 시대의 '맥적'을 들 수 있으며,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서 '설야멱'으로 이어졌고, 조선 후기 '너비아니'에서 현재의 '불고기'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적(炙)인 너비아니를 계승하는 의미를 가진 불고기는 석쇠에 굽는 불고기였으나, 6.25 전쟁 이후 육수 불고기가 등장하여 판에 간접 불로 굽는 번(燔)의 형태였으며, '전골' 등의 영향으로 국물이 생겨났습니다. 즉, 불고기란 우리나라 전통 구이인 적(炙)과 번(燔)을 모두 아우르는 대표 육류 구이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소고기를 좋아하여 농사의 노동 수단인 농우로 사용하는 소를 도축하지 못하도록 우금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으나, 소고기 수요와 식용 욕구를 잠재우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근대 문헌에서 '불고기’라는 용어를 최초로 볼 수 있는 것은 1922년 4월 1 일[개벽] 제22호에 실린 빙허 현진건의 소설 '타락자(墮落者)'입니다. 여기에서의 '불고기 덩이'는 '구운 고깃덩어리'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 밖의 문헌에서 발견되는 '불고기'라는 단어는 너비아니 류의 한국 음식(1926),국밥집의 불고기(1927), 평양의 명물 석쇠 불고기(1935,1939), 경상도 술안주 불고기(1936)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중가요에서 반찬으로서의 불고기(1938)가 등장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다르지만 '불고기'라는 단어가 이미 1930년대 중반에는 전국적으로 통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1920년대 중반, 갈비구이가 선술집이나 대중 식당에서 상업화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육류구이 식문화의 발전은 구이 전문점의 발전으로 볼 수 있으며 1939년 '한일관', 1946년 우래옥, 1948년
옥돌집 등의 창업으로 불고기 전문점이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고, 1960년대 초반 일본의 육절기가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하며 기존의 '석쇠 불고기'가 아닌 '육수 불고기'가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최초의 불고기 불판 특허는
1962년 '불고기 석쇠' 라는 명칭으로 박영찬 씨가 냈습니다. 이후 육수 불고기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식
메뉴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1945년에는 수원갈비의 원조 '화춘옥’이 창업하였고, 1950~60년대 사이 대중적이고 저렴한 이동갈비도 포천군 일대에 갈비구이 집단 촌락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양념구이류가 주류였던 육류구이 식문화에 생고기를 구워 먹는 '로스구이'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입니다. 또한 쇠고기 선호 성향이 뚜렷했던 식문화에 1950년대 중반에 돼지갈비를 주 업종으로 하는 전문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육류 식문화 전성기로 접어들던 1970년대 경제가 성장하자 한국인의 육류 소비는 욕구는 더욱 커져 육류 소비량이 급증하여 1968 년 수입산 뉴질랜드 소고기가 최초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1980년 초반부터 강남지역에 대형 공원식 갈비집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강북의 전통 있는 상권에서 강남의 개발 지역으로 고객이 몰리게 되었습니다. 소갈비 수요가 급증하여 1988년 정부에서는 소갈비 값 안정화를 위해 비공개적으로 미국에서 270톤을 긴급 수입해 공급했으며, 이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LA갈비입니다. 또한 1970년대 후반 삼겹살의 등장으로 서민 대중들의 육류구이 문화에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육류는 소비량 감소 및 정체가 되며 다양했던 육류구이의 종류가 쇠퇴하고 삼겹살의 독주가 시작되어 '삼겹살 전성시대' 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냉장 삼겹살'의 선호가 증가하며 돼지고기 브랜드화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결정적으로 돼지고기 소비를 촉진하게 된 계기는 경기 불황과 2003년 미국 발 '광우병'파동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소고기 등심과 갈비는 고급화로 2005년 외식품목 중 가장 가격이 많이 오른 음식은 소갈비였고, 전통적인 소고기 선호를 삼겹살 구이의 폭발적 인기로 돼지고기 선호로 바뀌었음을 보여줍니다.
 
2010년대 이후 고깃집들의 서비스 개선 및 신 메뉴 개발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육류구이 외식문화가 더욱 풍성해지고 다양해져 세계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외식 브랜드들이 나타나며 한류문화와 더불어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불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미국 서부에 첫 번째 미국 지점을 오픈하여 전 세계적으로 700개 이상을 운영하고 있는 규카쿠(牛角 )(Gyu-Kaku, Japanese BBQ Dining). 다운 드래프트 시스템인 무연 로스터를 이용해 테이블에서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내세우며 세계적으로 J-BBQ를 알리고 있는 일본 브랜드가 있습니다.
 
고객의 대부분은 일본인이 아닌 다양한 인종의 현지 거주민들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이 이 레스토랑의 음식이 일본 음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뉴 중 50~80%가 한국 음식입니다. '가루비(Karubi)', '비빔바(Bibimba)', '기무치(Kimuchi)', '차푸채(Chapu Che · 잡채)'부터 '나무루(Namuru · 나물)', '구파(Kuppa · 국밥)' 등 우리의 한식이 일본인들의 발음대로 표기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현대 일본의 야키니쿠(燒肉)는 그 유래를 192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인들의 서울 방문이 늘며 서울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기생의 접대를 받을 수 있는 조선 요리옥 방문이 늘었고, 이후 서울을 다녀간 일본인들이 늘어나자 평양의 한 기생이 1916년 경에 도쿄에 명월관이라는 상호의 조선 요리집이 문을 열어 한국의 음식들과 갈비구이 등을 팔았다고 합니다. 식민지 시절 서울에서 갈비를 '가리' 라고 부르며 종로 낙원동 일대 냉면집에서 갈비와 냉면을 팔았으며,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하여 1930년대 후반 오사카의 조선인 거주지 근처에는 냉면과 갈비구이를 판매하는 음식점들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식탁 가운데 화로를 올리고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굽는 방식을 처음 접한 일본인들도 대단히 좋아하여 조선 음식점에서는 갈비뿐 아니라 여러 부위를 구이의 재료로 내어 놓았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은 이 음식을 야키니쿠(燒肉)라고 부르기 시작하여 오늘날 소고기, 돼지고기, 내장 등을 소스에 묻혀 숯불에 구워 먹는 요리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1800년대 후반 메이지유신 이후에 시작된 일본의 소고기 식문화를 고려하고 K-Food에서 비롯된 일본 야키니쿠(燒肉)의 유래를 생각해 본다면 원조 격인 우리보다 한발 앞서 세계를 장악하는 J-BBQ의 확산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대를 거치며 변화해 온 우리의 육류 식문화의 가치를 더욱 견고히 하여 세계에 널리 알릴 K-Food 대표 상품으로 발전시켜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봅니다.

[출처:주영하의 백년식사, 근대 이후 100년간 한국 육류구이 문화의 변화 2009 이규진 외]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하여 - 한우다이닝울릉, 김인복